인도 표류기. 아름다운 당신은 누구시길래? 떠올려 회상하는 유년시절, 토요명화와 주말의 명화라는 회심의 타이틀과 웅장한 사운드로 사방을 마비시키며 찾아든 이국의 그녀들. 마를린 먼로를 위시로한 이국의 미녀들이 브라운관에 들어서면 아버지와 나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이심전심의 상태에 돌입, 불립문자의 정신으로, 염화미소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명확히 인식되어 지워지지 않는 낙인으로 남은 '금발' 이라는 낯설음의 미학. 아름다웠기에 사랑하였고, 현실에서 마주할 수 없었기에 서글프도록 아름다웠다(참고로 마를린 먼로의 금발이 염색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의 유년은 무참히 도륙나는 듯한 배반감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것도 잠시 뿐 그러나 저러나 좋았다). 시골에서의 유년을 벗어나 도시에서의 본격적인 청년시절에 돌입하던 무렵, 남들 놀 때 다 노는 것으론 성이 안차 남들 공부할 때도 놀고, 남들 잘 때도 쉬지 않코 놀던 쾌락의 열 아홉, 농도와 밀도 별로 다양하게 염색된 금발을 보았음에도 유년에 꿈꾸던 감탄이 아닌 의문과 탄식만이 자리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유비에겐 공명이 있고, 태권브이에겐 철이가 있으며, 라면엔 김치가 있어야 하는 것 처럼, 금발엔 푸른 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비록 염색일지라도) 금발에 검은 눈동자가 만들어 내는 불협화음은 그야말로 따로국밥의 형상이었음을. 것이 내가 머리에 왼갓 지랄을 다 하면서도 색을 추가하지 않는 나름의 분명한 소신과 확고한 주관이다. 헌데, 저 여자, 기묘하다. 분명히 검은 눈썹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검다고 말하기 무엇한 눈동자 때문인지 아니면, 금발과 조화율이 좋은 밝은 피부톤 때문인지, 넌센스의 부조화가 오히려 조화롭다 못해 왠지 신비스러운 그녀. 그건 그렇고 그녀는 누구시길래 무엇 때문에, Who & Why 이 야밤에 우리의 테라스를 지나쳐 갔다가 다시 우리 앞에 되돌아 온 것일까, 하는 의문은 금새 풀렸다. 애기인즉슨, 나 옆방에 묶는 여자인데 혹시 니들이 내 테라스에 놓여진 테이블을 쓴 게 아니냐, 는 내용을 주요골자로 하는 그녀의 말씀이 떨어지기도 전에, 옆방이라는 말만 듣고 일단 사과에 나섰으니, 먼저 양해를 구했어야 옳을 일이나, 사람이 없이 부득불 말 없이 몰래 빌려와서 죄송하다, 라고 응수를 하였고, 죄송하다 말하면 끝이냐, 어쨋건 훔친 것 아니냐, 일단 경찰서로 가자, 따위의 잡스러운 시시비비 대신 괜찮타, 나는 지금 필요치 않으니 원할 때 까지 써라, 라고 말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끈 것은 당연지사, 인지상정. 남아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다동
2011-08-06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