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표류기. 서른넷 나이에 쩜 백원 고스돕 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는 없다. 미취학 아동을 막 벗어나던 유소년 시절에나 어울리는 이야기. 모르지, 6만 3천 245점 정도 난다면 가능할지도. 판돈이 시시하면 게임이 시시해지는 것은 예의수순. 삶이라는 게임에 있어 최고의 판돈은 삶을 걸지 않는 나, 시시하다. 지겹다. 이놈의 인생. 생이 아도를 찍었다. 아도, 가진 것 모두를 걸라는 소리. 용필이 형님의 말처럼,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다. 돌아갈 구멍이 없는, 여지를 남겨놓지 않는 한판의 승부. 대처방안이란 양자택일. 올인 아니면 다이. 지금이냐 아니면 다시 다음이냐. 구원은 위에서 내려오지 않코, 지상에 낙원은 없다(물론 지하에도 없다). 그 존재 불규정하고 형체 불분명한 낙원이란 것이 실존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마음안에서나 가능한 일. 마음에 낙원이 깃든 자 어디에서던 행복할 터다. 기백 년 전, 대사라는 수사가 적합한 중 원효가 그러했듯이. 호불호를 뛰어넘어 중독이 도취에 닮아있다던 몇몇의 성인들과 달리 우리 보통의 인간들에겐 깨달음이라는 임팩트 넘치는 한방이 없고 그에 따른 현실이란 여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인 판박이의 운명을 지닌 슬픈 마네킹의 나날이다. 대부분 그렇타. 그러나 그러한 우리에게도 유사낙원은 있다. 비록 잠시잠깐의 착각일지라도, 낙원을 느끼게 해주는 곳들이 있다. 아쉽게도 그곳은 항상 이곳이 아니다. 낙원은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란 본래가 생겨먹기를, 한번 들은 소리를 재차 삼차 듣게되면 딱지가 들어앉는 귓구명을 지니고 있으며 본 것을 보고 또 보고 하면 구역직이 나오는 위벽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다(못 믿겠다면 들뢰즈의 노마디즘과 역치라는 전문용어를 참조해 보시라). 조물주가 잠깐 졸았던 탓인지, 아니면 전날의 음주가무과 과했던 탓인지, 여튼 그렇게 미완의 변태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때론 아주 드물게나마 완전을 뛰어넘는 미완이 나오기도 한다. 슈베르트를 봐라. 거짓말인가!). 한 곳에서 나고 자라 제 의지로는 다른 곳으로 향하지 못하는 나무와 달리 한 군데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는 습성을 지닌 인간의 다리는 언제나 여기가 아닌 어디를 꿈꾸어 왔고 또 실행에 왔으며 다시 꿈을 꾸게 마련이다. "방랑" 이라는 단어가 주는 자유와 낭만 그리고 방탕. 멋지지 않은가. 예외 없고 얄짤 없다. 다만 그 열망의 크기가 고저와 농도별로 달라질뿐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자본의 거센 올가미에 둘러쌓인 21세기. 개소리 잡소리 헛소리 집어치우고 그냥 시키는 일이나 죽어라 하세요, 라는 압박과 강압의 현실에서 자유와 방랑을 꿈꾸는 자의 발목은 오늘도 무겁고 또 버겁다. 꿈과 낭만이라는 열망을 폐기처분하지 않고선 견뎌내기 버거운 세상. 그래서 미치거나 일찍 사라진 자들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길이다. 남조선 땅에 본격적인 찬 바람이 불어오면 가벼운 차림, 그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는 이 삶의 접경지대를 넘을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거창한 한방을 맞이하지 않아도 좋타. 나 그렇게 욕심 많은 사람아니다. 시원한 맥주가 쌓인 해변에서 그 맥주보다 시원한 차림의 비키니로 무장한 금발의 미녀들, 폐기물 투성의 지구를 보다 아름답게 경각에 달한 지구의 아픔을 치유하고 생명연장의 꿈을 심어줄 그 앵글로섹슨 미녀들과 함께 별 총총 달 밝은 밤에 질퍽한 스킨쉽과 좀체로 줄지 않는 노가리를 풀어데는 밤, 나는 낙원을 느낄 것이다. 느낄 수 있음으로 진정으로 실존한다고 나는 믿을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백미를 장식하는 크리스마스엔 아마도 이런 구라를 풀고 있을 게다. "이 아름다운 해변에서 더 없이 아름다운 그대와 술을 마시는 이 아름다운 시간,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지. 해서 죽음을 생각해. 인간이란 역설적이게도 살아있다는 실감에서 죽음을 떠 올리지. 그래서 아, 죽어도 좋아, 라고 하는 거야. 비로서 죽음을 뛰어넘는 삶이 열리는 지금, 나는 그대를 사랑해" 라고(근데 이게 영어로 될라나). 쿤테라 식으로 정의하자면 생은 다른 곳에, 진정으로 살아내야할 삶이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모른다. 분명한 건, 소주가 없다해도 나는 행복하리라(물론 있다면 더 행복하겠지만). 편협한 성정이 지닌 개같은 성질이 또 다시 깽판과 꼬장을 일 삼는데도 분명 신선하고 즐거우리라. 그곳에선 그러하리라. 그리고 돌아와 나는 대답하겠다. 생이 내게 찍은 아도. 거기에 자신있게 응수하겠다.
다동
2011-10-19 0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