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소년. 인도차이나로 간다. 아름다운 여배우의 표본을 재정의한 폐월수화, 침어낙안의 미모를 지닌 장만옥과 (내가 보기엔) 그냥 희멀건 남자 배우 여명이 투톱으로 주연한 영화 첨밀밀. 시골남녀의 도시상경기를 시작으로 말랑말랑 또는 부끄부끄 때론 멜랑꼴리 한편 얄딱꾸리한 러브스토리 되시겠다. 내가 꼽는 이 영화의 명장면은 어정쩡하고 어중띄며 어중간한 사내 역활을 맡았던 여명이 아니라 진짜 사나이 역활을 호쾌하게 소화해내던 배우 증지위와 장만옥의 맛사지 씬이다. 한 푼 두 푼 알뜰살뜰 불려 모은 재산을 한 방에 날리고 마사지 샵에 출근하며 당최 웃지 않는 장만옥. 그리고 그녀를 흠모하는 조직 폭력배의 두목 증지위. 장만옥을 웃게 해주려, 그는 그녀가 가장 무서워한다는 쥐를 데려왔다고 하며 자신의 용문신 가득한 등판 가운데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웃음짓는 미키마우스를 새겨넣어 그녀를 미소짓게 한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여성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사내로서 존재가치를 부여받는 일. 맛사지와 미키마우스하면 나 역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장소는 태국, 맛사지를 편의점에서 콜라와 담배팔듯 건전하고 활발하게 판매하는 방콕에서 두 번째 맛사지를 받을 때의 일이다. 첫 번째 맛사지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기는 매 한가지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듯 영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어린 처녀가 내 부끄러운 발을 주무르며 옆 영국녀석을 맛사지하던 아줌마와 수다를 나누더니, 그 옆 아줌마가 내게 물었다. "너 타이어 할 줄 아냐?" "모른다." 그리고... "쉬 쎄이, 유 핸썸." 이에 "쉬스 뷰티플 투" 라고 응대하니, 그 말을 돌려받은 그녀가 엷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 볼이 붉었다. 그리고 문제의 두 번째 맛사지. 숙소 맞은 편에 있는 샵으로 들어가 전신 오일 맛사지를 위해 이층 블라인드 쳐진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데... 이건 무슨 얼토당토 않는 시츄에이션이란 말인가. 글쎄, 남자 마사지사가 들어오는 게 아닌가. 다른 누군가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 묻기도 했지만 내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상관이 있다. 나 남자가 내 몸 만지는 것 몸서리 쳐지게 싫타. "니가 내 마사지 할 꺼냐?" "그렇타." "이봐, 이건 비정상적이지 않느냐. 너도 남자 나도 남자, 장난하지 말고 다른 사람 올려보내라." 웃으며 알았다고 하더니 잠시 후 귀엽게 생긴 처자 한 명이 방에 들었다. 그런데 표정이 심하게 굳었다. 달갑지 않은 표정에 이어 어이없는 한 마디. "너 속옷 입고 있냐?" 엥?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당연히 입고 있다" "제발 속옷은 벗지 말아달라" 그제서야 이해가 온다. 그녀는 처음 내가 받았던 맛사지처녀에 비해 보다 방콕을 알고 보다 방콕에 익숙하며 보다 오래 지내왔을 것이다. 방콕에는 이른바 성소수자들이 부지기수인지라 대낮에도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는데, 그녀는 그 '다름' 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테고 나를 그 '다름' 의 사람으로 오인했을 것이다. "절대 그러지 않는다. 걱정마라." 라는 단언에도 그녀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속옷만 남기고 벗은 채, 엎드려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 키득키득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웃는다. 왜? "Why?" 라고 물으니, 더 크게 웃으며 한 마디 한다. "미키 마우스." 나는 미키 마우스 팬티를 입고 있었다(참고로 대략 대여섯 장즘 있다). 12월 7일 나는 방콕으로 간다. 방콕으로 들어가 캄보디아를 지나 베트남을 건너 라오스 넘어 다시 태국으로...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올 작정이다. 그녀가 아직도 그 샵에서 근무하고 있다면 나는 그녀를 기억할 수 있다. 그녀도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가보면 알겠지. 역시나 미키 마우스 팬티를 입고서. 미리 인사드린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고 더불어 해피 뉴 이어 하시라. 나 없는 대한민국에 단군 이래 최고의 한파가 몰려들길 바란다. 에이, 아니다. 취소다. 퉤, 퉤, 퉤. 아직 이 땅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중 누구도 추위를 달가워 않으니, 그냥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냥 즐겁기만 하시라. 여기 아닌 곳에서 나 역시도 그러할 테니.
다동
2011-12-06 00:16